2009년 3월 29일 일요일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ㅅ'

역시 덩이쇠가 최강이죠 'ㅅ'


제가 사학이라는 것을 전공해서, 지난 나흘 동안 경상남도 일대로 답사를 다녀왔습니다.(안가면 졸업 불가능) 가야 유적이랑 유물도 보고, 특히 현대화된 우리나라의 박물관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었어요.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손목이랑 손가락이 뻣뻣했던 것이 다 나았다는 점이죠. 나흘 동안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키보드, 마우스를 하나도 잡지 않다보니 그리된 것 같네요. 더불어 눈도 더 밝아졌구요.

결론은 역시 많은 어른들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컴퓨터를 줄여야한다. 역사적 증명입니다.

2009년 3월 21일 토요일

친구 한 명

나에겐 친구 한 명이 있는데

그는 너무 불쌍하다. 맥주 한 캔 마실 돈도 없어서 후달리고

게다가 차비도 아까워서 벌벌 떤다.

하지만 그는 너무 부유하다. 그에게는 항상 자기가 소속된 소모임과 학회에 애들을 불러오기 위한 뇌물을 줄 돈도 있고

또 홍대나 인사동의 맛집도 많이 알고 있었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의 이름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아직 열리지 않은 그의 지갑에는 대체 뭐가 들었을까?

2009년 3월 19일 목요일

서서마트

 우리동네에는 서서갈비라고 불리는 고깃집이 있다. 그곳의 이름이 하필이면 '서서'인 것은 드럼통에 갈비를 굽는데다, 예전에는 의자없이 사람들이 그 드럼통 옆에 둘러 서서 고기를 뜯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고깃집의 벽에는 그런 예전의 모습을 그린 오래된 그림이 걸려 있기까지 하다. 분위기도 그렇거니와 그림까지 있으니 의자가 있어도 석연치 않다. 서서갈비는 서서 먹어야하는 것이다.

먹는 것도 그런데 하물며 일하는 건 어떤가? 우리나라에는 서서 먹어야하는 것이 아닌, 서서 일해야하는 직장이 보편화 되어있다. 이른바 '서서마트'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직장의 계산원들은 여성이다.

광남일보 3월 16일 자 보도에 올라온 사진. 사진의 저작권은 광남일보에 있으며,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최남 기자이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최근들어 우리나라의 대형 마트(mart? what ever!, 내 생각에는 '대형할인점'이 알맞는 표현이지만 마트가 너무 광범위하게 쓰여 마트로 통합해서 표현했다)들이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 의자를 설치했다면서 언론에 크게 보도되고, 인터넷 신문들에는 의자가 비치된 마트 계산대의 사진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광남일보의 3월 16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H 회사의 광주 지역 마트 계산대에는 '한국산업안전보건위원회(KOSHA)의 심사기준에 합격한 인체공학적 제품'이 설치된다고 하는데, 희안하게도 사진의 여성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서서 일하고 있었다.(게다가 앉아서 계산할 수도 없게 되어있다) 역시 계산은 서서 해야 제맛인 걸까?

이렇게 된 속사정을 [한겨레]비엔비 클럽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마트 매장 관행적 분위기가 그렇게 만든다'고. 그러니까 손님이 없다고 계산원들이 앉아있으면 손'님'들이 보시기에 마트의 분위기가 아름답지 못하니 의자가 있어도 여성 노동자들은 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능적인 고문이라고 해야할까? 당신은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데 그곳에는 의자가 있고, 거기에 앉을 수 없다. 보기에 좋지 않으니까. 예전에 새벽에 농협에서 운영하는 초대형 마트에 들렀을 때 물건을 계산하면서 계산하시는 아주머니께 근무 시간이 어느정도냐고 물었더니 10시간이나 된다고 대답하셨다. 그 당시 예전과는 달리 신경써서 좀 나아졌던 수준이라는 게 계산원들이 서 있는 곳에 화장실 입구에 깔아두는 미끄럼 방지 패드가 있었지만, 10시간이라는 긴 시간동안 그렇게 서서 일하고 나면 몸이 성할 리가 없다.

그렇게 오랫동안 서서 일하면 피가 계속해서 아래로 쏠리게 되고, 결국에는 다리의 정맥들에 있는 판막이 고장난다. 그리고 찾아오는 질병이 정맥류. 다리에 시퍼렇게 정맥이 튀어나와 보기도 싫어지고, 고치려면 하루종일 압박 스타킹을 신고 약물을 마취도 없이 혈관에 계속 주사해야만 하는 끔찍한 병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인권에 대한 인식의 부족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서서 일하는데 근무시간이 10시간이고 이것으로 인해 직업병까지 생긴다.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수많은 한국의 마트 계산원들이 전부 '정규직'일 리는 없다. 그들은 가장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10시간 동안 서서 계속 고통받아야만 한다.

해외의 경우를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독일, 프랑스 공동 교과서에서 본 1960년대 프랑스의 대형마트 계산원들은 '합리적으로 앉을 수 있는' 의자를 제공받고 있었다.

1960년대 프랑스의 대형마트 - 독일, 프랑스 공동교과서

우리나라의 '여성노동자를 위한 의자'는 잠시 쉬는 용도라지만, 1960년대의 (현재의 모습은 어떤 지 모르겠다. 프랑스의 현대 대형마트를 가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프랑스 마트 계산원들의 의자는 앉아서 일할 수도, 서서 일할 수도 있는 합리적인 형태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런 지적을 동양적 가치관(종종 상인은 원래 서서 일한다...라는 식의 동양적 가치관을 내세우는 분들이 있다. 과연 진짜 동양적 가치관일까?)과 서양적 가치관의 차이인데 굳이 심하게 비교해야 하냐고 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것은 인권문제이다. 10시간 동안 의자를 뒤에 두고 서서 일한다는 것. 아마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마트에서 좀 더 나은 의자를 주게하고, 항상 앉을 수 있게 하라는 편지들을 고객의견함에 넣어주자. 그분들은 이 나라의 어머니들이시다.

2009년 3월 18일 수요일

언젠가

언젠가
사람들은 모두 잊는다

모두 잊어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도 잊을 즈음
세계에게 작게 한마디

안녕, 세상아

2009년 3월 16일 월요일

2009년 3월 15일 일요일

법 안지키는 사람들의 법 만들기

 얼마 전에 무슨무슨 편집을 빙자해서 과방에서 술을 진창 들이켰는데, 아뿔싸! 이게 웬일인가 하고 돌아보니 시계가 오후 11시 50분에 멈춰있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민중의 발이자 가장 현대적인 서비스업인 택시를 잡아 타는 일뿐이었다.

그런데 그 추운 날 밤 기사들의 행동이 참으로 기묘했다. 내가 손을 흔드는 데에도 '빈차'표시를 띄워놓은 많은 택시들이 천천히 나를 지나쳐 가버리는 게 아닌가? 그것도 나의 얼굴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훑어보면서 말이다. 결국 폐 속 깊숙이 골골거리는 택시 운전사 분이 겨우 멈추는 바람에 나는 택시를, 민중의 발을 얻어 탈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술병 속에 생각해보니 더욱 기묘한 장면이 떠올랐다. 바로 차량 뒷유리에 무슨 법을 만들어서 택시운전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써붙여놓은 택시들을 말하는 거다.

모든 택시 운전자 분들이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정말 잘 안다. 하지만 법을 잘 지키면서(적어도 손님을 무시하지 않는) 운행하는 택시 운전자들만큼이나 많은 수의 택시 운전사들은 그들이 태워야할 손님을 지나치고 도로에서는 사고가 날 듯 옆 차량에 끼어들며, 여성 운전자가 보이면 무섭게 그들의 차량을 들이민다. 또 우회전하는 곳에서 손님을 내리는 행태는 무엇인가! 그분들이 운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분들의 도로에서 하는 행동들은 너무나 무례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까 도로 위에서 가장 많은 '범법'(심지어 자기의 직업 상 반드시 해서는 안될 승차거부 등)을 행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택시를 운행하시는 분들일지도 모른다. 그분들에게 당하고 나면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그런데 그들은 법을 원하신다. 국가가, 정부가 내려주는 신성한 지위. 법. 기묘짭짤하지 않은가? 탈법을 가장 자주하는 분들께서 법을 제정해 자신들을 지켜주옵서 하니 말이다. 모름지기 법을 지켜가면서 법을 만들어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무려 현대(라고 쓰고 근대라고 읽는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가장 현대적인 서비스 업을 하는 사람들이 법을 어긴다니!

법 안지키는 사람들의 법 만들기. 그들의 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저 멀리 꿈을 향해 훨훨 날아가며 쥐의 울음소리를 내는 사람들처럼...

파라핀 봉인

파라핀 봉인은
항상 조금씩 닳곤 하였다.

이상하지만, 진짜 파라핀으로, 정말 뜨거운 불길 속에
녹아내렸던 봉인은 닳아 없어지곤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봉인도 그렇게
흔적만 남아서 다 닳고나면 다시 한 번
그 위에 나의 낙인을 찍어야지.

진짜 파라핀 봉인으로.

[연재소설] 10년 -3-

그렇지만, 그래. 나는 아직 살아있었고 그래서 집안에 들어섰다. 텁텁한 공기가 물을 머금고 목을 적셨다. 그건 그냥 물이 내는 것과는 다른 냄새가 분명하다. 그냥 물 위에서 조금씩 나아가는 와중에 잠긴 공기는 시원섭섭하지만 집안에서 나오는 것은 여기 사람이 있다고, 그렇게 조심스럽게 폐 속 깊숙이 속닥였다. 그렇지만 물은 우리를 반기지 않아서 우리가 항상 마시는 것임에도 우리가 그들의 품속에 안기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물은 그 속에 사람이 있건 없건 항상 그런 식으로 흘러만 간다.

물은 시원섭섭하다.

모든 것들이 물처럼 시원섭섭했었다. 적어도 내가 지금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그런데 이제는 모든 것들이 너무 소중해져버렸다. 예전엔 사람들이 그토록 버리고 싶어했던 자기디스크(그러니까 하드 디스크) 하나도 이젠 더 이상 제대로 만들 수도 없고, 35년 전에 만들어졌던 램도 아직까지 죽질 못해 신음하는 소리가 정부가 관리하는 시스템들의 사이에서 웅웅거리면서 스며나왔다. 그들의 기판사이에서 납과 플라스틱 수지를 뚝뚝 흘릴 때까지, 그래서 그들은 시원섭섭하게 버림받을 나이가 지났는데도 그렇게 고문당했다.

나도 그런 존재, 나의 본질은 남에게도, 남들이 나에게 대하는 행동도

예전에는 시원섭섭했었다.

그때에는 모든 것들이 시원하도록 섭섭했었는데....

더 이상, 시원섭섭하지 않았다.

물 속에 담긴 정부, 국가, 세계, 그리고 하나하나의 인간들. 발에 닿는 물이 너무 차가워서 이제는 서로가 녹아내리도록 서로에 대해 지나친 관심, 사랑, 인간애를 과시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너무나 싫었다. 내가 집 안에 들어서는 것, 내가 항상 쉬지 않고 내리는 빗물을 받아서 쓰는 것, 그리고 내 집을 밝히기 위해 켜는 작은 전구에 보이지도 않던 그런 모습을 보이는 그들이 나는 너무나

시원섭섭했다.


2009년 3월 12일 목요일

[연재소설] 10년 -2-


......

안녕하세요. 교수님

오 그래, 자네의 오늘 존재는 잘 지내고 있는 것인가?

네 그렇습니다. 보시는 것과 같이 전... 어느 정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래, 바로 자네들과 내가 내기를 했던 날이지, 10년이 지났어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7일이라는, 일주일이라고 부르는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그렇군. 그러면 자네, 그때 볼 수 있다면 좋겠구만. 난 내기를 걸었고 또 자네들과 같은 학생들에게 그 대가를 치뤄야하는 것이니 말일세.

저도 그 약속의 순간을 꼭 보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시간이 없어서.... 그러면 전 이제 집에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게나... 몸 조심하고 그나저나 집은 남아있는 겐가?

네 아직까지는... 제 존재가 오늘에도 있는 것처럼, 제 집도 아직은 이 근처에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내일 또 보길 기원하네.

네, 그럼.... 몸 조심히 들어가세요.

......

그리고 항상 계단을 내려가기 위해 나섰던 그 대학건물의 3층에서는 더 이상 계단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물에 휩싸요 흔적만 남은 계단에 있고 거기에는 존재를 가진 사람들만이 자동차라는 고대의 물건 대신 쓰는, 조그마한 배들와 어디에선가 가져온 길다란 대나무 노가 하나씩 걸려있었다. 그리고 따뜻한 햇살 아래 도서관이 배들을 조심스럽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한입 베어먹은 네모난 식빵처럼... 하지만 그 느낌은 정말 다른 것이었다. 갈색 벽돌건물의 촘촘한 그 벽돌들이 베인 모습은

어쩐지 서글펐다. 그러니까 이 서글픈 모습이라는 것이 대체 어떤 것이냐, 말하자면 이렇다. 내가 이 10년 뒤의 세상으로 오기 전의 일이었는데, 그 날따라 나는 과방에 앉아서 술을 많이 마셨다. 그리고 그 때의 나에게는 집도 있고, 집에는 부모님도 계시고, 또 돈도, 노트북 2개나 있었고... 외롭고 슬프지도 않았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항상 있어서 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리고 어떤 중압감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내가 무엇인가 반드시 해야한다던지 하는 종류의... 그런데 그 날 우리 과 동기 한 명이 술을 마시다가 말고 나가서는 불꺼진 텅빈 복도에 앉아서 그녀의 선배랑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막' 하고 있었다. 정말로 막, 그냥 울면서 웃고 그러는 것처럼 보였다. 술자리에서는 쾌활하게 술을 마시던 그 모습이 그 자리에서 죄다 토해내 버린 모양으로 학교 복도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은 분명,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서글픔이었을 것이다. 왜? 있지 않은가... 어떤지 속이 막혀서는 끄윽하고 트림 한 번만, 했으면 하는 상황에서 계속 답답한 상태가 계속되다가 결국 트림을 꺼억~ 하려는데 누군가 하필이면 또 내가 있는 주변으로 와서 도로 들어가버린 그런 것을 막

그 자리에 토해버린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막 토해내고 싶었나보다. 하지만 정말 그녀가 그걸 다 토해내었는지 난 보질 못했다. 그 답답한 모습을 뒤로 하고 난 말 그대로, 10년 후의 세상으로 날아가 버렸으니...

그러니까, 그런 답답하고 멀뚱한 모습으로 나의 학교 도서관은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꺼억~ 하는 소리로 답답했던 강철 케이블을 나의 배에서 풀어내었다. 강철의 케이블은 주우욱하고 깊은 계단을 타고 걸어내려갔다. 3층의 건물이 물에 잠긴 자신의 몸뚱아리를 훓어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처럼 케이블은 계속해서 토해졌다.

그리고 나의 작은 배 한 척은 내가 우리 학교가 있던, 그리고 그 바닥이 훤히 보여 지금이라도 누군가가 거기서 걸어다닐 것만 같은 작은 광장을 내려다보면서 스윽...하고 지나갔다. 내가 그 위를 걷는 것마냥 나의 긴 장대로 바닥을 경쾌하게 톡, 톡, 짚어보았다.

날이 어둑해져서는 건너편의 길다란 다른 아파트들이 주황색의 풍광을 나에게 쓸어내고 있을 즈음, 내가 사는 아파트의 창문들이 저 멀리 하나의 축을 향해 펼쳐졌다. 내가 살던 집 베란다에 드리워진 강철 케이블로 배를 멈췄다. 예전에는 1층에 살았던 이름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었던, 뒷 베란다의 정원 위로 나는 나의 이 작은 배 하나를 멈춘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떨어져 있던 작은 헬기에서 꺼내온 사다리로 기어올라 난 내가 집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들어갔다. 예전에는 모두들 다 같이 살았던 이 집에 난 혼자남아 있었다. 그랬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너무 많이 죽어버렸다.

[연재소설] 10년 -1-


......

그러니까, 제 이야기의 핵심은 너무 많이 죽었다는 겁니다. 누가 많이 죽었냐고요? 바로 당신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이 강단에 서서 아무리 말해도 당신들 중에 대부분은 이 이야기를 심각하게 듣지 않으니까요! 우리, 내기를 하나 해볼까요? 10년 뒤에, 그때까지 살아있었던 이 강의실 안의 사람들은 아직도 여기에 그대로 앉아있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들 중 대부분은 다시는 이 자리에 앉아있지 못할 거에요. 만약 이 말이 틀리다면 저는 당신들에게 저를 죽일 수 있는 권리를 드리겠습니다.

......

제가 당신들에게 죽었다고 말하는 걸 설마 '정신적 죽음'으로 생각한 건 아니겠죠? 죽었다는 것은 한마디로 모든 것이 멈춘 것을 말합니다. 당신의 그 모든 것, 그리고 당신이 인지하는 이 세계는 끝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들이 죽었다고 하는 것은 이미 정신이 나간 것이 보이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지구가 대기를 모두 잃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지구에는 그 어떤 것도 살아있지 않을겁니다. 지금 당신들이 죽어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을 잊지 마세요.

우리는 오늘
내기를 했습니다.

당신들 중 살아있는 사람들만이 10년 뒤에, 이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을 겁니다.

질문있습니까?

교수님, 그렇다면 교수님의 말씀이 맞다면 우리는 교수님께 무엇을 드려야하는 겁니까? 내기는 쌍방의...

아, 이 내기에서 제가 이기면... 별 다른 것은 없습니다. 다만 당신들은 나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이지요.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저 학생 외에는 질문할 사람도 없으니까 말이죠.

잊지마세요

오늘, 우리는 내기를 하나 했습니다. 절대로 잊지마세요.

......


그리고 그 강의가 끝난지 10초도 지나지 않았다. 나는 방금들었던 그 괴상한 소리에 대한 고찰을 해야만한다. 수업이니까. 누가 그랬던가, 철학이라는 것은 우리가 항상하는 것이라고. 어쩌면 그 교수가 우리에게 말한 것은 그런 의미 정도의 맥락이 아닐까? 하지만 그가 말했던 바, 우리는 죽어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죽어있는 상태의 지속은 무엇이고 또 그것을 인지하는 죽은 자에 대한 것을 나는 생각해야하는 것인가? 어찌되었던 이건 수업이고 나는 그 수업을, 뭔가 배우기위해 들었던만큼 멈추지 말아야했다. 나의 생각은 절대로 멈추어서는 안되는 순간 순간에

그리고 그 순간의 사이와 사이로, 나는 항상 죽어있었다라고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 모든 것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 다음 수업. 어짜피 공간이라는 것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서 모든 일이 일어나고 나는 또 나라는 공간 속에서만 살아있지만, 그 멍청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

나는 오늘, 총 4개의 수업을 각 1시간 30분씩 듣고...... 그 와중에 질문이란 것은 하지도 않았다. 집에 오니 오랜만에 일찍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다니시는 회사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분명 그들은 얼마전에 나타나지 않았던가? 하여튼 세계는 내가 이런 수업에 대한 것만 생각하는 일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

수업에 늦었다. 교실문을 열자

저벅저벅하는 소리의 한가운데로 조용하게, 바람이 흘렀다. 이 문장, 사실 웃기지 않습니까 여러분들? 조용하게 바람이 흘러가다니 이건 대체 무슨 소리인걸까요? 조용하다는 것은 소리가 나지 않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래, 갑자기 어떤 소리도 나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내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학생들도 소리를 듣지 못했다. 길쭉한 직육면체의 공간에서 모두들 한꺼번에 일어나 조용히 서로의 얼굴을, 그리고 입을, 또 창문을 보았다. 우리는 지금 듣지 못하는 것인가? 라고 생각하자 갑자기 모든 것이 보이지 않았다.

......

......그리고 그가 예견했던 바, 10년이 흘렀다. 나는

살아있었다. 그 순간. 그 모든 것이 느껴지지 않았을 때 많은 사람들은 나처럼 변해가는 세계에 빨리 적응하지 못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것이니까. 나는

정말이지 내가 그 짧은 시간동안 집에 와서 잠깐만이라도 내 자신과 또 내 삶의 바깥을 생각한 일이 지금까지도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나는 분명 죽었을 것이다. 나란 존재는 사(史)라는 것이 없어진 세계에 여전히 그 흔적을 세기고 있었다. 정말 다행히도 그리고 내일이 오겠지...

2009년 3월 11일 수요일

Rule of the World

Even though our life is ruled by people who has much power, we have to believe one of the greatest stories ever told.

2009년 3월 7일 토요일

선생 모양 고깃덩어리

 이 사건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다. 그러니까 내 동생이 학교에 등교한 시점 말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의 동생은 그렇게 불량하다던지 학교규정을 절대로 어기지 않는다. 그런데 학생부에서 나온 선생 모양 고깃덩어리가 내 동생을 붙잡아서는 두발단정을 어겼다고 난리를 쳤단다. 이유는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정대로 '검은' 머리를 가진 사람이 없다. 실상은 갈색에 가깝고... 내 동생도 그런 식으로 갈색의 가까운 머리카락 색을 가졌는데 그걸 잡아서는 수험생을 지각처리당하게 해놓았다. 당연히 동생은 잘못이 없는데 자기를 붙잡으니 너무나 억울해서 울면서 어머니께 전화를 했고, 그 선생이라는 것이랑 말 싸움이 붙었다.

어머니 : 그 아이는 원래 머리가 갈색이다. 오늘도 흰 머리가 몇개 있어서 뽑아 주었는데 무슨 염색이냐

선생고기 : 그건 염색인데 어쩌구 저쩌구 다시 검은 색으로 염색을 시켜라 어쩌구

어머니 : 지금도 흰 머리가 좀 있는데 무슨 소리냐

선생고기 : 아니 그건 알겠는데, 이 애가 매직을 해서 규정 위반이다 어쩌구 (실제로는 위반 아님) 그래서 머리가 탈색이 되서 갈색으로 된 건데 (지가 내 동생을 키웠나?) 다시 염색 해줘야한다

어머니 : 그러면 애가 머리가 원래 갈색인데, 염색하고 나서 머리카락이 자라면 위는 갈색에 아래는 검은 색으로 살라는 거냐?

선생고기 : .......

하도 기묘한 소리를 하면서 멀쩡한 애를 잡아서 울려놓으니, 결국 아침부터 화가나신 부모님께서는 학교로 출동해서 그 선생이라는 고깃덩어리를 만나고 오셨다.

살다면서 여러종류의 미친 선생모양 고깃덩어리를 보았지만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다. 결국 직접대면 상황에 닥친 우리 고깃덩어리는 이제와서 말을 바꾸셨다. 갈색인 건 아는데 매직을 해서 그렇다, 오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말이 안통하는 것이, 나의 동생은 정말 억센 곱슬머리카락이기 때문에 매직을 안하면 이번에는 곱슬거리는 파마를 했다고 잡아가기 때문. 결국 우리 선생 고깃덩어리는 층 하나 없이 말끔한 머리카락을 두고 층을 내서 잡았다고 우물쭈물 하였다. 결론은 고깃덩어리가 오늘 기분이 좀 안좋아서 아무나 잡아서 괴롭힐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선생 고깃덩어리가 모르는 사실. 요즘 아이들은 검은 색의 파란빛이 도는 염색을 한다. 오히려 선생이 나서서 자신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단정함'을 그르치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괜히 교권붕괴가 일어나겠나? 고깃덩어리들이 교내를 활보하는 경우가 줄어든다면, 그런 이야기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2009년 3월 5일 목요일

솔베이지의 노래, Grieg - Solveig`s Song

Solveig's Song
솔베이지의 노래

On Vocal
- Meav Ni Mhaolchatha -


The winter may pass and the spring disappear,
the spring disappear....
겨울이 지나갈 거고 봄은 사라지네
봄이 사라져가네....

The summer too will vanish and then the year,
and then the year....
여름도 곧 사라지고나면 그 해도 다 가겠지
그리고 그 해도....

But this I know for certain, you'll come back again,
you'll come back again....
하지만 이건 확실히 알고 있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올 거란 것을
당신이 다시 올 거란 사실을....

And even as I promised, you'll find me waiting then,
you'll find me waiting then.....
그리고 내가 약속한 것처럼 마침내 당신은 날 찾을 거고,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나를 찾을 것이고.....

..........

And even as I promised, you'll find me waiting then,
you'll find me waiting then.....
그리고 내가 약속한 것처럼 마침내 당신은 날 찾을 거고,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나를 찾을 것이고.....

2009년 3월 4일 수요일

술병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그래서 술병이 났고
나는 술병걸린 꿈 속에서 끝없이 포탈을 탔다
마치 내가 자고 일어나는 것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서
하지만 결국 지금에 와서 그 꿈은 끝났고

그렇게
내가 자고 일어나는 것도 언젠가는 그 꿈처럼 끝날 것이다

2009년 3월 2일 월요일

쿠분투(kubuntu) 8.10에서 lightscribe 작동하기


라이트스크라이브(Lightscribe)는 기록을 마친 DVD나 CD의 표면에 레이져로 직접 라벨을 그리는 기술입니다. 비록 이 기술을 적용한 미디어는 값이 비싸지만 한 번 라벨을 작성하면 지워지지 않기때문에 매직이나 스티커로 라벨를 만들어 붙이는 것 보다 훨씬 보존성이 좋습니다. 물론, 모든 라이터가 이런 특수 미디어에 라벨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라이트스크라이브 전용 라이터가 있어야만 합니다. 보통 라이트 스크라이브가 있는 라이터는 위의 로고가 붙어있습니다.

이 기술은 역시나 '윈도우즈'를 기준으로 만들어져있기 때문에 한동안 리눅스에서는 이 기능을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물론 라이트스크라이브 공식 사이트에서 SimpleLabeler를 제공하였지만, 말그대로 아주 간단한 텍스트 몇줄과 무늬를 세기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완전하다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2006년도(즉 우분투 6.06 Dapper Drake)에 Lacie라는 회사에서 리눅스용 라이트 스크라이브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현재 배포판에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걸 쓰려면 라이트스크라이브에서 제공하는 시스템 파일을 설치해야합니다. 이 링크로 가시면 4개 항목이 있는데 여기서 맨 위에 있는 Light Scribe System Software를 누르고 약관에 동의하시면 다운로드 링크가 나옵니다. 파일형식은 deb을 받으셔야 우분투에 설치가 가능합니다. 그 후에 위에 있는 4L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터미널 창에서
sudo 4L-gui
를 입력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화면이 나오면서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 파일을 불러와 라벨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물론 sudo 권한으로 실행안해도 켜지긴 켜지지만, 그렇게하고 나면 라벨을 그릴 수 없다고 나옵니다.

또, 가끔특정 라이브러리를 불러올 수 없다고 하면서 실행이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4L-cli: error while loading shared libraries: libstdc++.so.5: cannot open shared object file: No such file or directory

이런 경우에는

sudo apt-get install libstdc++5
을 하시면 라이브러리 의존성 문제가 해결됩니다. 여기까지 하시면 우분투에서도 즐거운 라이트스크라이브 생활을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