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월요일 아침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
전능하신 그 분을 찬양하는 노래.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 한 분.
나는 대한민국의 대학교강당에 앉아
저기 태평양 너머의 '린다'라는 한 여자의
보람찬 삶을 말씀하시는
목사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또
악하게 돈을 벌면 안된다고
허영을 멀리하라고
하느님의 뜻을 전해받았다.
은은한 색의 고급양복, 세련된 몸짓
나는 그래,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잠시 성역에 깃들었던 나의 몸은 어느덧
습한공기 내려앉은 교정의 한 가운데.
성인의 건물 위 검은 휘장으로
등록금을 부당하게 올리는 재단의
악을 규탄하는
학우들의 목소리들이 수놓여 있었다.
나는 그래, 오늘 아침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것 같았다.
2008년 7월 30일 수요일
2008년 7월 29일 화요일
EeePC 1000H 본격 뜯어보기
네... 그럼 본격 EE!ePC 리뷰를 시작하겠습니다
리뷰보기
전체적인 키보드의 터치감은 고급노트북에 비하면 좋지않지만 이 정도 사이즈와 가격에서는 정말 괜찮은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LG노트북 키보드의 철판두드리는 느낌보다 훨씬 낫습니다 'ㅅ')
웹캠은 1.3메가픽셀. 그냥 적당하게 웹캠채팅을 하거나 간단하게 사진찍는 정도로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음성채팅을 할 때 필수인 마이크는 LCD 하단에 있어 적절한 배치라고나 할까요 'ㅅ'
하드디스크는 재미있게도 2.5인치 사타방식입니다. 2.5인치 하드가 작은 몸체에 들어가 있으니 어울리지않아 좀 웃기게 보이기도 하더군요 ^ㅅ^ 2.5인치면 무겁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1.8인치를 찾아해메지 않고 평범한 2.5인치 일반노트북용 사타하드를 꽂으면 되니 얼마나 편리하겠습니까! 또 하드의 가격도 1.8인치보다 2.5인치가 싸니 부담도 적겠고요.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마무리가 상당히 깔끔하고 고급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오른쪽 시프트키의 문제점과 무선랜 'N'과의 연결이 불안하는 점에서 좀 아쉽긴 합니다.
메신저나 인터넷 등 간단한 작업을 주로하고, 동영상 강의정도를 보시는 용도로는 제일 최적입니다. 작아서 이동하기도 쉽고, 발열도 적으니까요. 항상 인터넷에 접속하시는 분이라면 와이브로와 함께 쓰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개발하시는 분들이나 워드를 많이 쓰시는 분들은 오른쪽 시프트키 때문에 한번 실물을 보시거나 키보드를 많이 쓰는 분들 중에 이 모델을 사셨다면 직접 여쭤보시고 구매하시는게 좋을 것 같네요.
고성능의 게임은 당연히! 될 리가 없으므로 그런 용도로는 구입하시는 걸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카트라이더 정도의 가벼운 캐주얼 게임들은 무리없이 작동하니, 간단한 게임정도는 문제될 게 없겠죠.
네! 이로서 EeePC 1000H 리뷰를 마칩니다. 여기까기 읽어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ps. 이 글을 쓰느라고 엄청 힘들었는데요.. .일단 아래에 보시듯, 사진찍고 노트북을 재부팅했더니 상큼하게 커널패닉 한방! 터지더군요. 아마 자기말고 다른 노트북을 올려놓기까지 했다고 자가시스템붕괴를 시도한 듯 합니다.
시간이 나는데로, 한번 T61도 리뷰해보겠습니다. 하지만 텍스트큐브닷컴이 너무 불안정해 언제 올릴지는 정확히 말씀드릴수가 없군요...
하여튼! 결국 전 승리했다는 게 오늘의 주요 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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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27일 일요일
우분투 8.04 종료시 로그아웃 사운드 재생이 안되는 문제점 해결하기
우분투가 pulse audio라는 사운드 서버를 채택한 이후 생긴 문제가 종료나 재부팅시에 지정한 로그아웃 사운드가 재생없이 시스템이 쫑난다는 것이었습니다. 펄스오디오 사운드 서버가 소리를 재생한 다음에 죽어야하는데, 희안하게도 우분투에서 이것을 도입한지 좀 되고 LTS버전이 나온 지금까지도 이 문제점을 고치지 않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최종사용자들은 소리를 안듣거나, 아니면 펄스오디오 패키지 대신에 그 전에 사용되오던 'esound' 패키지를 설치하여 로그아웃 사운드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사운드 패키지를 설치하면 펄스오디오보다 이사운드가 먼저 우선시되고, 따라서 각종 플레이어들을 켤때마다 '펄스오디오가 죽었습니다. 어흑흑'(?)같은 이상한 메세지들을 접하게 되는데 이것도 로그아웃 사운드가 재생 안되는 것만큼 짜증이 절로 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이런 모든 짜증없이 그냥 로그아웃 사운드를 듣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일단 터미널에 다음과 같이
라고 입력합니다. 이렇게 하면 노틸러스가 루트 계정으로 실행이 됩니다. 그리고 /(파일시스템)에 가셔서 /sbin 폴더를 찾으시고, 거기에 오른쪽 클릭 후 '문서 만들기'에서 빈 파일을 하나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그 파일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넣은다음 파일의 이름을 'shutdown_mod'로 지정한 후 저장합니다. 이 파일의 의미는 종료 전에 로그아웃 사운드를 재생하고, 그 후 일반적인 그놈 로그아웃 커맨드를 실행하겠다는 뜻입니다. 처음에 #!/bin/sh를 붙였으니 쉘 스크립트가 되는데, 이걸 그냥 만든다고 바로 실행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방금 만든 shutdown_mod 파일을 선택해서 오른쪽 클릭으로 '속성'을 연 다음, 권한 탭에서 다음과 같이 '파일을 프로그램으로 실행허용'에 체크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닫기'를 눌러 창을 닫습니다.
그러면 일단 명령어를 만들었으니, 종료시에 이 명령어로 종료되게끔 해야하므로 시스템->관리->로그인 창을 클릭해 하단의 명령어 편집을 눌러 종료 명령어를 편집합니다.

아마 기본적인 종료명령어는 /sbin/shutdown -h now 로 되어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을 스크린샷에서처럼 아까 만든 /sbin/shutdown_mod 로 변경해주고 닫습니다.
이렇게 하고 종료버튼을 누르면 이사운드 패키지를 깔지 않고도 로그아웃 사운드가 재생됩니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재시작 쉘 스크립트를(예컨테 reboot_mod) 새로 만들고 '다시 시작'의 기본 명령어를 대체해주면 됩니다. 이때에는 쉘 스크립트 마지막 부분을 다음과 같이 'shutdown -r now'로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시고나서 재시작 버튼을 누르면 그동안 조용했던 로그아웃 세션에서 소리가 잘 나올 것입니다.
이 해결책의 내용은 우분투포럼(http://ubuntuforums.org) 내용을 검색하여 적용한 것입니다. 원문의 내용은 http://ubuntuforums.org/showthread.php?t=789858 에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최종사용자들은 소리를 안듣거나, 아니면 펄스오디오 패키지 대신에 그 전에 사용되오던 'esound' 패키지를 설치하여 로그아웃 사운드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사운드 패키지를 설치하면 펄스오디오보다 이사운드가 먼저 우선시되고, 따라서 각종 플레이어들을 켤때마다 '펄스오디오가 죽었습니다. 어흑흑'(?)같은 이상한 메세지들을 접하게 되는데 이것도 로그아웃 사운드가 재생 안되는 것만큼 짜증이 절로 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이런 모든 짜증없이 그냥 로그아웃 사운드를 듣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일단 터미널에 다음과 같이
gksu nautilus
라고 입력합니다. 이렇게 하면 노틸러스가 루트 계정으로 실행이 됩니다. 그리고 /(파일시스템)에 가셔서 /sbin 폴더를 찾으시고, 거기에 오른쪽 클릭 후 '문서 만들기'에서 빈 파일을 하나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그 파일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bin/sh
#이줄에 자신이 원하는 명령어를 넣으세요
aplay /usr/share/sounds/shutdown.wav
# 그 다음 줄은 일반적인 그놈 로그아웃 커맨드입니다
/sbin/shutdown -h now "Shut Down via gdm."
넣은다음 파일의 이름을 'shutdown_mod'로 지정한 후 저장합니다. 이 파일의 의미는 종료 전에 로그아웃 사운드를 재생하고, 그 후 일반적인 그놈 로그아웃 커맨드를 실행하겠다는 뜻입니다. 처음에 #!/bin/sh를 붙였으니 쉘 스크립트가 되는데, 이걸 그냥 만든다고 바로 실행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방금 만든 shutdown_mod 파일을 선택해서 오른쪽 클릭으로 '속성'을 연 다음, 권한 탭에서 다음과 같이 '파일을 프로그램으로 실행허용'에 체크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닫기'를 눌러 창을 닫습니다.
그러면 일단 명령어를 만들었으니, 종료시에 이 명령어로 종료되게끔 해야하므로 시스템->관리->로그인 창을 클릭해 하단의 명령어 편집을 눌러 종료 명령어를 편집합니다.

아마 기본적인 종료명령어는 /sbin/shutdown -h now 로 되어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을 스크린샷에서처럼 아까 만든 /sbin/shutdown_mod 로 변경해주고 닫습니다.
이렇게 하고 종료버튼을 누르면 이사운드 패키지를 깔지 않고도 로그아웃 사운드가 재생됩니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재시작 쉘 스크립트를(예컨테 reboot_mod) 새로 만들고 '다시 시작'의 기본 명령어를 대체해주면 됩니다. 이때에는 쉘 스크립트 마지막 부분을 다음과 같이 'shutdown -r now'로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bin/sh
#이줄에 자신이 원하는 명령어를 넣으세요
aplay /usr/share/sounds/shutdown.wav
# 그 다음 줄은 일반적인 그놈 로그아웃 커맨드입니다
/sbin/shutdown -r now "Rebooted via gdm."
이렇게 하시고나서 재시작 버튼을 누르면 그동안 조용했던 로그아웃 세션에서 소리가 잘 나올 것입니다.
이 해결책의 내용은 우분투포럼(http://ubuntuforums.org) 내용을 검색하여 적용한 것입니다. 원문의 내용은 http://ubuntuforums.org/showthread.php?t=789858 에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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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23일 수요일
대한폭력주의공화국
요즘 있는 사건 중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을 체벌한 것이 핸드폰에 찍혀 인터넷에 올라와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사실 초등학생에게 체벌을 가하는 일들은 예전에는 흔했다지만 요즘에는 폭력에 대한 경계심이 있어 그런지 사건이 터지면 바로바로 기사가 되어 우리들에게 알려지더군요.
특히, 이런 사건들이 터지게 되면 인터넷이 발달되어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많은 의견들이 오가기 마련입니다. 오죽하면 때렸겠냐... 그래도 폭력은 정당화되서는 안된다... 등등
그런데 오늘 자주가던 '오늘의 유머'라는 사이트에서 이 사건에 대해 이게 2008년도의 대한민국에서 나올 법한 의견들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수준이 추악하기 그지없는 글들을 보았습니다. 일단 그 내용이 뭔지 궁금하실터이니, 그 추악한 의견들 중 하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오늘의 유머라는 사이트는 다른 거대 포털들과 마찬가지로 의견을 추천하고 반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 저 글의 내용을 보면 체벌은 있어야한다는 주장이다. 것도 남자선생님이니 ' 저 정도'의 체벌을 가하지 않는다면 계속 싸웠을 거라는 표현도 정말 눈뜨고 봐주기가 힘들군요. 그런데 중요한 건 보시는 바와같이 이런 댓글이 예상외로 정말 많은 추천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제가 본 '배우는 아이들'에 대한 이런 폭력이 정당화 된 시점은 일제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즉 당시 무력으로 한국을 진압하고 일왕에게 충성을 강요하고, 강제로 신사참배를 하게하고... 그리고 이런 근대적 제국주의의 산물이 해방 후 우리나라에 그대로 남게 되었고, 사실상의 일제의 잔재를 몰아내지 못한 대한민국의 교육계에는 '체벌'이라는 멋들어진 이름까지 갖춘 '정당화된 폭력'이 자리잡았던 것입니다.

사실 '선생'이라는 직업은 어떠한 이유를 들어서라도 아이들을 때려서는 안되는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위치에서 관용과 어울림을 가르쳐야할 선생이, 배우고자 하는 아이들에게 일상적으로 보여주는게 '폭력'이라면 아이들이 어떻게 그 선생에게서 배움을 받아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 사회 구성원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보시는 것과 같이 지금 2008년도의 대한민국에는 아직까지도 그런 폭력교육의 받아 폭력이 내면화된 분들이 정말 많은 듯 합니다.
제가 평소에 다른 선진국(이른바 서구, developed countries라고 자처하는 국가들)에 대한민국을 비교하는 일이 종종있어 사대적이라는 말을 듣습니다만, 이번에는 꼭 비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살인무기인 총까지 합법으로 하는 미국의 경우, 부모조차도 아이를 때리면 법을 어긴 것으로 국가에서 처벌을 내리고 부모에게서 아이를 격리시킵니다. 프랑스의 경우 절대로 교육의 현장에서 어린 나이의 아이들을 때린다는 것은 있을 수조차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21세기의 대한민국, 이 땅에서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 아닌 정당화된 폭력입니다. 교생분들에게는 아이들을 때리는 게 당연한 걸까요? 위에서 설명드린 사이트에서 제가 댓글을 달았는데, 거기에 대해 어떤 분이 또 이런 댓글을 다셨더군요

보아하니 교생이셨던 것 같은데, 우리나라의 선생님들은 '교육하는 방법'을 교육받고도 자신들보다 한참 어린 아이들에게 휘둘려서 때리지 않으면 교실을 가라앉히지도 못하나 봅니다. 아이들이 영악하다면서 사고능력은 부족하다... 이런 발언을 하시는 분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니 끔찍합니다.
하도 폭력을 정당화하는 글들이 많길래, 제가 촛불시위에 빗대어서 의견을 말해보았습니다. 경찰이 그렇게 많이모인 시위대들을 해산시키지 못해서 물대포를 쏘는 거랑 다를바가 뭐가 있냐고. 그랬더니 그 다음에는 이런 답글이 돌아왔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게 2년전이었습니다. 그리고 5년전에는 중학교를 졸업했었죠.. 그런데 이게 웬말인지... 교생을 나가보셨다고 하는 분이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옳다고 생각되는 항목에 대하여 상호 협의하에 정해진 체벌을 받는 것이라고 하시네요(그러면서 같은 종류의 분명한 '폭력'을 똑같이 분류했다고 분노가 치미신답니다.) 그러나 제가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단 한번도 이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고3때도 아침 자율학습에 늦으면 무조건 아이들이 다 보는 한가운데에서 몽둥이로 엉덩이를 두들겨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어느 선생님들도 저희들에게 상호협의같은 말을 꺼내신 적은 없었습니다.
(희안하게도 제가 다른 선진국들은 왜 애들을 때리지않으면서 가르치는데도 모범생도 있고 불량학생도 있냐고 물은 것에는 아이들 수가 많아서 그렇다는 궁색한 변명이(OECD 국가 기준으로 보면 어쩌구... 현실적으로 안맞으니 때려야해요... 그럴거면 왜 사범대를 다니는 겁니까?) 바로 튀어나오더군요.)
일차적으로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을 성인과 아이들이 상호협의로 정한다는 것도 웃기지만, 만에 하나 정말 상호협의가 되었다던지 아니면 학교라는 하나의 체제에 들어온다면 반드시 '선생에게 맞아야 한다'는 법이 있다고 칩시다. 아까 말씀드렸던 촛불시위에 물대포를 쏘는 것. 사실 그건 집시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말을 안들으면 국가가 폭력으로 해산시키는 것이죠. 그런데, 그 국가가 공인하신 '폭력'이 제대로 정해지시는 것을 보셨습니까? 정해진 규정을 벗어나 강한 수압의 물줄기를 얼굴에 뿌리고 군화발로 쓰러진 여대생의 몸과 머리를 마구차는 전경들...
잘 생각해보시면 아시겠지만, 폭력은 이런 식으로 '정해진 수위'를 항상 넘어가게 만드는 특성이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추악했던 히틀러의 유태인학살도 처음에는 유태인들을 때리고 가두는 정도가 발전했던 것입니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전 이해할 수도 종잡을 수도 없습니다. 폭력은 이토록 사람을 무섭게 만드는 것입니까? 부모가 아이를 때리는 것... 대한민국은 너무 특수한 나머지 부모가 너무 화가나서 그럴 수 있다라고 봐준다고 합시다. 그런데 '교육현장'에서 모든 아이들이 보는 앞에 '교육자'라는 사람이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때린다면 이것이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최근에 교권이 추락했다는 말들...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들이 '권력'을 쥐신 분들이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아이들을 이끌어오신겁니까? 이런 사고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니, 당연히 선생에 대한 존경도, 신뢰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여러분들도 간단하게 기억하실 수 있는 사건들이 몇가지 있을겁니다. 잘못했다고 따귀를 때리거나 발로차고, 또한 엎드리게 하여 엉덩이를 때리는 등등. 그 순간에 든 생각이 어떤 것입니까? '아 내가 잘못해서 선생님이 때린거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이 드셨습니까? 당연히 아이들은 이런 미친 학교보다는 항상 웃기는 말로 잠을 깨워주고 몸이 아프면 걱정도 해주는 진정한(자본주의적인 요소만을 제외한다면) 선생님 상인 '학원 선생님'들을 더 믿고 따르게 되고, 학교시험공부를 학원가서 하는 아주 웃기지도 않은 상황에 온 것입니다.
전 정말 요즘들어 광기의 대한민국에서 산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도 미쳤고, 국민들도 미쳐돌아가는 걸까요? 한손으로는 소통을 하겠다면서 다른 손으로는 국민을 치는 정부. 다른 입으로는 정부의 폭력을 규탄하면서 교육현장에서 맞아야한다는 것을 당연하다고 떠드는 네티즌들.
부디 생각을 바꿔주시길 바랍니다. 당신들께서 맞았던 그 매는 사랑도, 법칙도 아닙니다. 단지 아이들을 다룰 줄 모르는 서투른 '선생'들의 귀찮음일뿐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이런 사건들이 터지게 되면 인터넷이 발달되어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많은 의견들이 오가기 마련입니다. 오죽하면 때렸겠냐... 그래도 폭력은 정당화되서는 안된다... 등등
그런데 오늘 자주가던 '오늘의 유머'라는 사이트에서 이 사건에 대해 이게 2008년도의 대한민국에서 나올 법한 의견들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수준이 추악하기 그지없는 글들을 보았습니다. 일단 그 내용이 뭔지 궁금하실터이니, 그 추악한 의견들 중 하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은 동물 다루듯이 엉덩이나 어깻죽지정도는 쳐야 제맛이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오늘의 유머라는 사이트는 다른 거대 포털들과 마찬가지로 의견을 추천하고 반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 저 글의 내용을 보면 체벌은 있어야한다는 주장이다. 것도 남자선생님이니 ' 저 정도'의 체벌을 가하지 않는다면 계속 싸웠을 거라는 표현도 정말 눈뜨고 봐주기가 힘들군요. 그런데 중요한 건 보시는 바와같이 이런 댓글이 예상외로 정말 많은 추천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제가 본 '배우는 아이들'에 대한 이런 폭력이 정당화 된 시점은 일제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즉 당시 무력으로 한국을 진압하고 일왕에게 충성을 강요하고, 강제로 신사참배를 하게하고... 그리고 이런 근대적 제국주의의 산물이 해방 후 우리나라에 그대로 남게 되었고, 사실상의 일제의 잔재를 몰아내지 못한 대한민국의 교육계에는 '체벌'이라는 멋들어진 이름까지 갖춘 '정당화된 폭력'이 자리잡았던 것입니다.

때려도 이성은 존재하고 있다네요. 그러니 어른들은 아이들은 때려줘야합니다(?)
사실 '선생'이라는 직업은 어떠한 이유를 들어서라도 아이들을 때려서는 안되는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위치에서 관용과 어울림을 가르쳐야할 선생이, 배우고자 하는 아이들에게 일상적으로 보여주는게 '폭력'이라면 아이들이 어떻게 그 선생에게서 배움을 받아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 사회 구성원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보시는 것과 같이 지금 2008년도의 대한민국에는 아직까지도 그런 폭력교육의 받아 폭력이 내면화된 분들이 정말 많은 듯 합니다.
제가 평소에 다른 선진국(이른바 서구, developed countries라고 자처하는 국가들)에 대한민국을 비교하는 일이 종종있어 사대적이라는 말을 듣습니다만, 이번에는 꼭 비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살인무기인 총까지 합법으로 하는 미국의 경우, 부모조차도 아이를 때리면 법을 어긴 것으로 국가에서 처벌을 내리고 부모에게서 아이를 격리시킵니다. 프랑스의 경우 절대로 교육의 현장에서 어린 나이의 아이들을 때린다는 것은 있을 수조차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21세기의 대한민국, 이 땅에서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 아닌 정당화된 폭력입니다. 교생분들에게는 아이들을 때리는 게 당연한 걸까요? 위에서 설명드린 사이트에서 제가 댓글을 달았는데, 거기에 대해 어떤 분이 또 이런 댓글을 다셨더군요

폭력은 당연해
보아하니 교생이셨던 것 같은데, 우리나라의 선생님들은 '교육하는 방법'을 교육받고도 자신들보다 한참 어린 아이들에게 휘둘려서 때리지 않으면 교실을 가라앉히지도 못하나 봅니다. 아이들이 영악하다면서 사고능력은 부족하다... 이런 발언을 하시는 분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니 끔찍합니다.
하도 폭력을 정당화하는 글들이 많길래, 제가 촛불시위에 빗대어서 의견을 말해보았습니다. 경찰이 그렇게 많이모인 시위대들을 해산시키지 못해서 물대포를 쏘는 거랑 다를바가 뭐가 있냐고. 그랬더니 그 다음에는 이런 답글이 돌아왔습니다.

폭력을 상호협의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선생님과 아이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게 2년전이었습니다. 그리고 5년전에는 중학교를 졸업했었죠.. 그런데 이게 웬말인지... 교생을 나가보셨다고 하는 분이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옳다고 생각되는 항목에 대하여 상호 협의하에 정해진 체벌을 받는 것이라고 하시네요(그러면서 같은 종류의 분명한 '폭력'을 똑같이 분류했다고 분노가 치미신답니다.) 그러나 제가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단 한번도 이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고3때도 아침 자율학습에 늦으면 무조건 아이들이 다 보는 한가운데에서 몽둥이로 엉덩이를 두들겨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어느 선생님들도 저희들에게 상호협의같은 말을 꺼내신 적은 없었습니다.
(희안하게도 제가 다른 선진국들은 왜 애들을 때리지않으면서 가르치는데도 모범생도 있고 불량학생도 있냐고 물은 것에는 아이들 수가 많아서 그렇다는 궁색한 변명이(OECD 국가 기준으로 보면 어쩌구... 현실적으로 안맞으니 때려야해요... 그럴거면 왜 사범대를 다니는 겁니까?) 바로 튀어나오더군요.)
일차적으로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을 성인과 아이들이 상호협의로 정한다는 것도 웃기지만, 만에 하나 정말 상호협의가 되었다던지 아니면 학교라는 하나의 체제에 들어온다면 반드시 '선생에게 맞아야 한다'는 법이 있다고 칩시다. 아까 말씀드렸던 촛불시위에 물대포를 쏘는 것. 사실 그건 집시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말을 안들으면 국가가 폭력으로 해산시키는 것이죠. 그런데, 그 국가가 공인하신 '폭력'이 제대로 정해지시는 것을 보셨습니까? 정해진 규정을 벗어나 강한 수압의 물줄기를 얼굴에 뿌리고 군화발로 쓰러진 여대생의 몸과 머리를 마구차는 전경들...
잘 생각해보시면 아시겠지만, 폭력은 이런 식으로 '정해진 수위'를 항상 넘어가게 만드는 특성이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추악했던 히틀러의 유태인학살도 처음에는 유태인들을 때리고 가두는 정도가 발전했던 것입니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전 이해할 수도 종잡을 수도 없습니다. 폭력은 이토록 사람을 무섭게 만드는 것입니까? 부모가 아이를 때리는 것... 대한민국은 너무 특수한 나머지 부모가 너무 화가나서 그럴 수 있다라고 봐준다고 합시다. 그런데 '교육현장'에서 모든 아이들이 보는 앞에 '교육자'라는 사람이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때린다면 이것이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최근에 교권이 추락했다는 말들...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들이 '권력'을 쥐신 분들이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아이들을 이끌어오신겁니까? 이런 사고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니, 당연히 선생에 대한 존경도, 신뢰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여러분들도 간단하게 기억하실 수 있는 사건들이 몇가지 있을겁니다. 잘못했다고 따귀를 때리거나 발로차고, 또한 엎드리게 하여 엉덩이를 때리는 등등. 그 순간에 든 생각이 어떤 것입니까? '아 내가 잘못해서 선생님이 때린거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이 드셨습니까? 당연히 아이들은 이런 미친 학교보다는 항상 웃기는 말로 잠을 깨워주고 몸이 아프면 걱정도 해주는 진정한(자본주의적인 요소만을 제외한다면) 선생님 상인 '학원 선생님'들을 더 믿고 따르게 되고, 학교시험공부를 학원가서 하는 아주 웃기지도 않은 상황에 온 것입니다.
전 정말 요즘들어 광기의 대한민국에서 산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도 미쳤고, 국민들도 미쳐돌아가는 걸까요? 한손으로는 소통을 하겠다면서 다른 손으로는 국민을 치는 정부. 다른 입으로는 정부의 폭력을 규탄하면서 교육현장에서 맞아야한다는 것을 당연하다고 떠드는 네티즌들.
부디 생각을 바꿔주시길 바랍니다. 당신들께서 맞았던 그 매는 사랑도, 법칙도 아닙니다. 단지 아이들을 다룰 줄 모르는 서투른 '선생'들의 귀찮음일뿐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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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22일 화요일
eeePC 1000H 간단 리뷰
동생 책상에서 인증!
사실 이런 진정한 의미의 '저가형 미니노트북'은 아수스가 내놓은 eee가 맨 처음이었고, 따라서 어느정도 신뢰할만한 요소들이 많다고 생각했고.. 사실 국내발매 윈드의 경우 LED 스크인을 채용했다고는 하지만 블투모듈의 부재, 온보드의 램이라는 상당히 황당한 확장성(1기가가 추가 가능하지만 또 533Mhz짜리만 달 수 있다더군요) 등등... 이쁜 것을 빼놓는다면 eee를 따라가기는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진의 제품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10인치의 스크린을 단단하게 감싼 본체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인상을 줍니다. 또 기본적으로 포함된 마우스도 상당히 예쁘고 미니노트북에 어울리게 만들어졌더군요. 1000h의 경우에는 1.6기가 헤르쯔의 아톰기반 프로세서에 무선랜 n까지 가능한 리얼택의 칩셋을 쓰고, 10인치 lcd에 최대해상도는 1024*768까지 가능합니다. 재미있는건 이 최대해상도로 설정할때에 화면이 찌그러지지 않게해주면서 웹브라우져보듯 화면을 스크롤링해주는 유틸이 있다는 겁니다. 기본 램은 1기가이고 최대 2기가까지 확장이 가능하더군요. 특히 기존의 eee가 SSD를 채용하여 하드의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했지만, 윈드와 1000h는 모두 2.5인치 사타하드를 지원하기때문에 쉽게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또한 1.3메가 해상도의 웹캠과 유틸리티가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있어 XP 사용자 설정 후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까지는 ebsi 동영상강의를 보는 것과 웹서핑 정도만 테스트 해봤는데, 끊김없이 잘될뿐만 아니라 특별한 팬이 없어도 장시간 사용시 발열관리도 잘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저가'라는 점에서 오는 불편함들은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몇가지 있었습니다.
일단 오른쪽 시프트 키가 작아서 프로그래밍이나 워드를 많이 작성하시는 분들의 경우에는 적응하시기가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두번째로는 LCD 화면의 질적 문제인데, 조금은 어두운 감이 있었고 마지막은 기본 내장된 스피커의 출력이 상당이 작다는 것입니다. 물론 스피커가 하단부분으로 들어가서 소리가 작은 것도 있지만, 좀 작은 편이라고 느껴질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오늘의 리뷰는 이정도로 마치고, 나중에 외형과 업그레이드를 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ㅅ'
텍스트큐브의 문제점들 - 파비콘 등록불가
오늘 드디어 제대로 짧은 글도 한편 썼다. 그래서 이젠 완벽히 옮길 생각을 해서 파비콘을 그대로 옮겨볼 생각으로 기존 블로그에 있던 파비콘을 다운받은 다음 적용하려고 하였다.

상당히 멀쩡하게 잘되는 듯 하지만...(하긴 되면 이런 글을 쓸리도 없다.)

막상 분명한 ico 파일을 로드시켰는데도 이런 메세지를 내뿜는다.
사실 아직 텍스트큐브가 베타라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좀 '심한' 수준인 것 같다. 그동안 티스토리의 정책이나 여러가지 안되는 기증들이 마음에 걸려 그냥 내버려두었건만, 만약 텍스트큐브.컴도 그닥 다르지 않다면 어쩔 수 없이 서버를 하나 집에 두고 써야할지도 모르겠다 -ㅅ-
하여튼, 텍스트큐브닷컴 팀들이 빨리빨리 이런 점들을 고쳐줬으면 좋겠다.

상당히 멀쩡하게 잘되는 듯 하지만...(하긴 되면 이런 글을 쓸리도 없다.)

막상 분명한 ico 파일을 로드시켰는데도 이런 메세지를 내뿜는다.
사실 아직 텍스트큐브가 베타라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좀 '심한' 수준인 것 같다. 그동안 티스토리의 정책이나 여러가지 안되는 기증들이 마음에 걸려 그냥 내버려두었건만, 만약 텍스트큐브.컴도 그닥 다르지 않다면 어쩔 수 없이 서버를 하나 집에 두고 써야할지도 모르겠다 -ㅅ-
하여튼, 텍스트큐브닷컴 팀들이 빨리빨리 이런 점들을 고쳐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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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가(燒酎歌)

소줏고리
비가 미친듯이 내리는 밤이면
나는 그대, 소주가 생각나오.
불사르고 눈물을 진국으로 흘려 만들던 그대는
이제는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인데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소주병을 기울인다오.
단 한방울의 눈물조차 없이 만든 것을 사람들은 자꾸 삼키지만
삼키는 이들의 눈에는 물기조차 고이지 아니하는데,
그대여 소주
나는 다시 보고싶소.
깊은 독 맑게 퍼올린 청명함이었든
독 아래 고인 탁함의 흐르는 색깔이었든
고리를 타고 내려와 한방울씩 모이는 그 눈물을
나는 다시보고 싶다오.
2008년 7월 19일 토요일
텍스트큐브에 발을 내딛다.
사실, 티스토리에서 블로그를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견딜 수 없었다.
좀 치졸한건지, 태터1.1 기반의 티스토리에서는 안되는 admin과 guest의 댓글 앰블럼 구분때문에 계속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 지금에 이르러 텍스트큐브에 온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아직까지는 변한 것이 없다. 그러고보니 아직은 단장중인 이곳에 멍하니 되지않는 기능들만 바라보기는 그동안 너무 오래 기다렸다는 생각도 들고...
아, 다만 나의 그 쳐짐과 질어버린 마음이 여기서 만큼은 막 끓는 밑술처럼, 부풀어오르는 반죽마냥 활기가 넘치기를 바랄뿐이다.
좀 치졸한건지, 태터1.1 기반의 티스토리에서는 안되는 admin과 guest의 댓글 앰블럼 구분때문에 계속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 지금에 이르러 텍스트큐브에 온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아직까지는 변한 것이 없다. 그러고보니 아직은 단장중인 이곳에 멍하니 되지않는 기능들만 바라보기는 그동안 너무 오래 기다렸다는 생각도 들고...
아, 다만 나의 그 쳐짐과 질어버린 마음이 여기서 만큼은 막 끓는 밑술처럼, 부풀어오르는 반죽마냥 활기가 넘치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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